고대 이스라엘 사회에는 율법에 따라 특별한 주기마다 지켜야 했던 '안식년(쉬미타)'과 '희년(요벨)'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두 제도는 단순한 휴식이나 경제 제도를 넘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안식년(쉬미타, שמיטה)
안식년은 히브리어로 '쉬미타'라고 하며 '놓아줌', '면제'를 뜻합니다. 6년 동안 땅을 경작한 후 일곱 번째 해에 돌아오는 해로, 주로 레위기 25장 1-7절과 신명기 15장 1-11절에 그 규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말씀(개역개정)
레위기 25장 1~7절
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5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7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
신명기 15장 1~11절
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3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주요 규정 및 목적
- 땅의 안식: 가장 핵심적인 규정은 땅을 경작하지 않고 쉬게 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거나 포도원을 가꾸는 등의 농사 행위가 금지되었습니다. 이는 땅의 회복을 위한 환경적인 목적과 더불어, 땅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신앙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안식년에 땅에서 저절로 자란 소출은 땅 주인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 거류민, 심지어 들짐승까지 함께 나누도록 했습니다.
- 채무 면제: 같은 동족 이스라엘 백성에게 빌려준 빚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이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완화하며 공동체 내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만, 이방인에게 빌려준 빚은 면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신명기 15:3).
- 종의 해방: 히브리 종들은 6년간 섬긴 후 제 칠 년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신명기 15:12-18).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영원한 종노릇은 없음을 보여주는 제도였습니다.
안식년의 의미
안식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고, 땅과 자원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사회 공동체 안에서 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6년 동안의 수고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시험대이기도 했습니다. 6년째 되는 해에 3년 동안 먹을 만큼의 소출을 주시겠다는 약속(레위기 25:20-22)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희년(요벨, יובל)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라고 하며, '수양의 뿔 나팔'을 의미합니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 즉 49년 후의 50년째 되는 해가 바로 희년입니다. 희년은 안식년 규정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혁명적인 사회 경제적 회복을 목표로 했습니다(레위기 25장 전체).
주요 규정 및 목적
- 토지 반환: 매매되었던 모든 토지가 원래의 소유주나 그 가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땅의 근본적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며,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분배된 기업(땅)은 영구히 사고팔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줍니다(레위기 25:23). 토지 매매는 사실상 다음 희년까지의 사용권을 사고파는 개념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부의 영구적인 편중을 막고 모든 지파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종의 해방: 희년이 되면 모든 히브리 종들이 완전히 해방되어 자신의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레위기 25:10). 이는 안식년에 해방되는 종들과는 별개로, 빚 등으로 인해 종이 된 모든 히브리인의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 채무 면제: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모든 채무가 면제되었습니다.
- 땅의 안식: 희년에도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땅을 경작하지 않고 쉬게 했습니다. 따라서 희년 직전의 49년째 안식년과 희년인 50년째 해에는 연속으로 농사를 쉬게 되었습니다.
희년의 의미
희년은 문자 그대로 '기쁨의 해', '자유의 해'였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가난이나 빚 때문에 종이 되었던 사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해방과 회복을 선포하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희년 제도는 이스라엘 사회가 세월이 흐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장치였습니다. 이는 또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적인 해방과 회복을 예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안식년과 희년 제도는 땅과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모든 구성원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긴 율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독특한 사회 경제 시스템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나눔, 정의, 회복 등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