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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도움 (for Bible meditation)

<사도신경_1> 기독교 신앙의 첫 고백: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by 하루살이은혜 2025. 4. 29.

많은 기독교인이 예배나 개인적인 신앙생활 속에서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간결하게 담아낸 이 신앙고백문은 수 세기 동안 교회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그 첫 구절,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근본적인 선언이자, 기독교 신앙 전체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는 하나님의 핵심적인 속성인 '전능하심', 우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아버지 되심', 그리고 그분의 근원적인 사역인 '창조주 되심'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사도신경의 이 첫 고백,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담긴 깊은 의미와 신학적 중요성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신경(새번역)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해설 대표 이미지

 

 

역사 속 신앙고백_ 사도신경의 형성

사도신경이 오순절 이후 사도들이 한 구절씩 만들어 완성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초대교회의 신앙 교육과 세례 문답 과정에서 사용되던 초기 신앙고백문들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초기 고백들은 새로운 신자들에게 신앙의 핵심을 가르치고, 당시 등장하던 이단 사상으로부터 정통 신앙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사도신경의 직접적인 모체는 2세기 중반 로마 교회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 로마 신조'입니다. 초기 형태에는 "천지의 창조주"와 같은 문구가 없었으나,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내용이 추가되고 발전했습니다. 특히 "천지의 창조주"라는 문구는 7세기경 문헌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는 물질세계를 악하게 보았던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 사상에 맞서,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셨음을 강조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완전한 형태는 8세기 초에 이르러 정착되었고, 이후 서방 교회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도신경의 첫 구절은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을 명확히 정의하며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히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분의 본질과 세상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풍성한 고백입니다.

  • 하나님: 기독교 신앙의 유일하고 참되신 최고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의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론을 거부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믿는다는 유일신 신앙의 선언입니다.
  • 아버지: 이 칭호는 하나님을 단지 창조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이는 하나님과 피조물,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과 맺으시는 인격적이고 사랑에 기초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아버지'는 권위와 동시에 따뜻한 돌봄, 깊은 사랑, 그리고 친밀함을 함축합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주권을 나타내는 핵심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당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으로 고백됩니다.
  •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전능하심이 구체적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사역을 통해 드러남을 명시합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며,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신학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지적인 동의를 넘어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탁을 표현하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개별 속성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통합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지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 모든 것은 '창조'라는 근원적인 행위를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독단적이거나 변덕스러운 힘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에 기반한 목적 있는 능력이며, 동시에 그분의 아버지 되심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뒷받침되기에 우리에게 참된 소망과 의지가 됩니다.

 

 

전능하심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의 무한한 능력과 주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당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분께 불가능이란 없으며, 자연과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지만 '전능'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해는 몇 가지 질문을 낳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일(예: 둥근 사각형 만들기)이나 자신의 거룩한 본성에 어긋나는 일(예: 죄짓기, 거짓말하기)도 하실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신학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즉,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거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행하실 수 없으며, 이는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힘인지, 아니면 사랑으로 설득하고 이끄시는 힘인지에 대한 논의도 있습니다. 과정신학 등 일부 현대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주로 설득적인 영향력으로 이해하며, 피조물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케노시스(자기 비움) 신학은 하나님께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능력을 제한하셨으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역설적인 능력이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전능하심'은 단순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추상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라는 본성과 결합된 '완전한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지만, 동시에 그분의 선하신 본성과 피조물과의 관계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행사되는 능력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매우 중요한 측면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관계, 즉 성부 하나님과 영원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친밀한 호칭인 '아빠'(Abba)라고 부르셨고, 제자들에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그 사랑의 관계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근원 되심과 권위, 동시에 자애로운 사랑과 돌봄, 그리고 우리와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함축합니다. 또한 모든 생명의 창조주로서의 역할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용어는 인간 아버지의 경험에 빗댄 유비적 표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성별 구분을 초월하시는 분이며, 성경은 때로 어머니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인간 아버지의 불완전함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과 돌봄이 모든 아버지 됨의 근원이자 표준임을 보여줍니다.

한편, 이 '아버지'라는 용어는 여성신학으로부터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남성 중심적 언어가 여성을 배제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중요한 신학적 용어이며, 삼위일체와 구속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고, 사랑과 권위, 친밀함 등 대체하기 어려운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관계에 뿌리를 둔 계시된 진리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확장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핵심적인 신앙 표현입니다.

 

 

성경 속 증거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라는 고백은 성경 전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 전능하심: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 예레미야서의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라는 고백, 욥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라는 인정, 누가복음의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선언, 요한계시록의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라는 찬양 등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증언합니다.
  • 아버지 되심: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로마서의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는 증언, 에베소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표현 등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의 아버지 되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 창조주: 성경의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언, 이사야서의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골로새서의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가르침, 히브리서의 창조가 믿음의 대상임을 밝히는 구절 등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확증합니다.

이처럼 사도신경의 첫 구절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핵심적인 계시를 압축하여 담아낸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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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교파의 해석

사도신경은 대부분의 서방 기독교 교파에서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각 교파의 신학적 전통에 따라 해석과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가톨릭 교회는 교리 해설서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우주적이고 사랑에 기반하며 신비롭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부활, 그리고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에서 그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 되심은 만물의 근원이자 권위, 그리고 자녀를 향한 선하심과 사랑의 돌봄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성별 구분을 초월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 장로교/개혁주의 전통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영원한 작정, 그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섭리를 매우 강조합니다. 전능하심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이루시는 능력으로 이해하며, 아버지 되심은 주로 삼위일체 내의 관계 속에서 설명됩니다.
  • 감리교 전통은 웨슬리의 신앙 조항 등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지혜, 선하심을 고백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주로 사랑과 은혜를 통해 역사하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보편적인 사랑 안에서 이해됩니다. 아버지 되심은 창조주로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사랑과 은혜, 돌보심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이처럼 각 교파는 동일한 고백 안에서도 자신들의 신학적 틀 속에서 그 의미를 풍부하게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또한 사도신경은 니케아 신경과 비교했을 때, 특정 신학 논쟁에 대응하기 위해 더 상세하고 정교하게 작성된 니케아 신경과 달리, 보다 간결하고 역사적인 형태로 기본적인 신앙 내용을 요약하여 전달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두 신조는 서로 보완하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증언합니다.

 

 

맺음말

사도신경의 첫 구절,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는 수 세기 동안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어 온 강력하고 풍부한 고백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시는 사랑의 아버지, 모든 것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 고백은 깊은 역사적 뿌리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여전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사랑, 그리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헌신을 표현하는 살아있는 신앙의 선언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이 첫 고백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세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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